1688년 영국의 명예혁명
1685년 뉴욕을 세운 요크의 공작이 영국의 제임스 2세(James II, 1633-1701)로 즉위했다. 그의 재임중에 주식회사 설립 붐과 투기의 시대가 열렸다. 이는 1687년 뉴잉글랜드호의 선장 윌리엄 핍스가 히스파니올라 섬 부근에 침몰한 스페인 해적선에서 건져올린 은 32톤과 상당한 양의 보석을 싣고 잉글랜드로 돌아오면서부터 시작되었다. 왕과 선장, 선원들은 자신들의 몫을 챙긴 뒤 남은 것을 1만%의 배당금 형태로 항해를 지원한 파트너들에게 배분했다. 양치기 소년이었던 핍스 선장은 기사작위와 기념메달을 받았다. 이 성공담이 영국 전역에 퍼지면서 해저유물 인양에 뛰어드는 사람들이 폭증한 것이다.(Chancellor 2001)
그러나 제임스 2세는 인기 없는 왕이었다. 1688년 의회는 그의 딸인 프로테스탄트교 메리(Mary) 공주와 그녀의 남편인 네덜란드 왕 오렌지의 윌리암 공(William of Orange)을 왕으로 추대했다. 자신의 아버지인 찰스 1세에게 일어났던 일 때문인지 제임스 2세는 저항하지 않고 프랑스로 도피했다. 영국인들이 ‘명예혁명’(the Glorious Revolution)이라고 부른 이 무혈혁명의 결과 윌리암과 메리는 공동 왕이 되었다. 의회와 국왕은 왕권이 의회에 종속되는 제한군주제에 합의했으며, 이는 식민지에 심리적 영향을 미쳐 지배층에 대한 저항 분위기를 고조시켰다. 총독을 내쫒는 등 여러 식민지에서도 무혈혁명이 일어나게 된다.(Brinkley 1998)
이런 상황에서 존 로크(John Locke, 1632-1704)의 『시민정부론(Of Civil Government)』(1690)은 출간되자마자 영국에서 정치무대에 오르기 시작한 중간계급의 바이블이 되었다. 로크는 인민들이 부당하고 폭압적인 지배자에 반대할 때에는 언제든지 ‘하늘에 호소할’ 권리가 있고 반역할 수 있다고 했다. 로크의 논문은 영국 의회 개혁의 이론적 근거가 되었다. 그는 이전 사상가들과 마찬가지로 사유재산이 자연의 법이며 변경될 수 없다고 주장했지만 논리 방식은 달랐다. 무엇보다도 노동의 가치를 고양하고 재산 취득을 인간 존재의 최고 업적으로 칭송했다.(Rifkin 2005)
18세기는 데카르트에서 로크로 옮겨간 시대지만, 그렇다고 데카르트가 완전히 죽은 건 아니었다. 로크는 토론이 단어가 아닌 ‘본질’을 중심으로 이루어져야 한다고 주장했는데, 이는 홉스의 경우처럼 데카르트의 영향을 받은 것이었다. 버트란드 러셀(Bertrand Russell, 1872-1970)이 ‘근대철학의 창시자’라고 했던 데카르트는 과학적 방법의 발전에 중요한 공헌을 했다. 특히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Cogito, ergo sum)”는 주장은 영국의 경험주의자들로 하여금 교회의 계시적 지혜에 의문을 제시하게 만들었다.(Altschull 2003, 김병걸 1999)
로크․몽테스큐가 미국에 미친 영향
로크는 경험주의의 아버지인 동시에 자유주의의 아버지다. 자유주의(liberalism)는 개인의 자유가 주요 관심사인 이데올로기다. 사회철학적으로는 개인의 합리성을 신봉하는 이념체계로서 의회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주창하면서 방법론적으로는 사회현상에 대해 개인의 행동이 기반이 된다는 것을 기본 입장으로 삼는다.(홍훈 1992) 자유주의 전통에는 로크의 자유주의와 홉스(Thomas Hobbes)의 자유주의가 혼재한다. 홉스의 냉혹한 개인주의와 달리 로크의 자유주의는 자본주의 사회의 무절제한 자기 이익을 위한 철학이 아니라 일종의 ‘덕성’을 요구하는 사상이다.(권용립 2003)
그렇다고 해서 로크가 그런 덕성의 소유자였느냐 하는 건 별개의 문제다. 그가 말한 인민은 중간계층을 의미했으며, 로크 자신도 비단 무역과 노예 무역에 대한 투자, 대부나 저당으로 소득을 가진 부자였다. 그는 식민지 캐롤라이나의 고문으로서 헌법을 작성하는 일을 맡아 40명의 부유한 지주, 귀족들에 의하여 운영되는 노예소유자의 정부를 제안하기도 했다. 그는 불쌍한 어린이들의 노동은 “그들이 12-14세가 될 때까지 일반적으로 사회에 대한 의무를 갖지 않는다”는 점을 유감스럽게 생각했으며, 구호대상 가족 가운데서 아이들이 3명을 넘을 경우 모든 어린이들은 “어릴 때부터 노동에 익숙하도록 노동학교에 보내라고 주장했다.(Zinn 1986)
식민주의의 정당성을 이론화한 최초의 자유주의자도 로크였다. 그는 문명화를 내세워 식민주의를 정당화했다. 스페인은 ‘칼에 의한 정복’이지만 잉글랜드의 식민화는 인간적이라며 긍정했다. 훗날 칼 마르크스(1818-1883)도 똑같은 논리를 편다. 마르크스는 『뉴욕 데일리 트리뷴』 1853년 6월 25일자에 쓴 <영국의 인도 지배>라는 글에서 식민주의를 문명화의 사명으로서 정당화하는 관점을 피력하면서 “잉글랜드의 죄악이 무엇이건 간에 그들은 아시아에 근본적인 혁명을 가져오는 데 역사의 무의식적인 도구가 되었다.”며 제국주의에 지지를 보냈다.(박지향 2000) 마르크스는 그해 8월 8일자에 쓴 <영국의 인도 지배의 잠정적 결과들>이란 글에선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영국은 인도에서 두 가지 사명을 수행해야 한다. 하나는 파괴적인 것이요 다른 하나는 재생적인 것인 바, 바로 케케묵은 아시아 사회를 폐기하고 아시아에 서구적 사회의 물질적 기반을 마련하는 것이다.”(Plenel 2005)
로크의 사상을 프랑스에 널리 퍼지게 만든 것은 볼테르(Voltaire)의 로크에 관한 논문이었다. 이 논문은 로크의 사상을 훨씬 더 급진주의로 바꿔놓았다. 볼테르 숭배자인 토머스 제퍼슨(Thomas Jefferson, 1743-1826)이 로크를 혁명가로 본 것은 볼테르의 글을 통해서였다.(Altschull 2003) 로크의 사상은 미국 독립전쟁의 철학적 기초를 제공했으며, 미국의 사회적 질서는 로크의 경험주의를 기반으로 하여 구축되었다.
로크 못지 않게 또는 그 이상으로 미국 독립전쟁과 건국 초기에 영향을 미친 유럽의 사상가는 몽테스큐(Montesquieu, 1689-1755)였다. 몽테스큐의 『법의 정신(The Spirit of Laws)』(1748)은 권력분립론을 내세운 절대주의․전제주의 비판서로 나오자마자 교황청의 금서 목록에 올랐지만, 2년 동안에 22판이나 찍을 정도로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이 책은 1750년대의 식민지 미국에도 잘 알려져 있었으며, 1787년 미국 헌법을 기초하기 위해 필라델피아에 모였던 건국의 아버지들의 필독서였다. 특히 제퍼슨과 더불어 미국 ‘건국의 아버지’ 중의 한 명이었던 제임스 매디슨(James Madison, 1751~1836)이 몽테스큐의 찬미자였다.(Altschull 2003, 홍사중 1997) 1760년부터 1805년까지 미국에서 나온 정치적 저작물에서 인용된 사상가들의 수를 조사한 결과, 가장 널리 인용된 사상가는 로크가 아니라 몽테스큐인 것으로 밝혀졌다.(권용립 2003) 아마도 몽테스큐의 삼권분립 이론이 헌법 제정자들의 가장 중요한 헌정 원리가 되었기 때문일 것이다.(조지형 2007)
자유주의․공화주의 논쟁
로크로 대변되는 자유주의는 18세기 미국 정치사상사의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큰 영향을 끼쳤지만, 1960년대 후반부터 ‘공화주의적 수정론자’로 불리는 여러 학자들이 자유주의 대신에 공화주의를 강조하고 나섰다. 미국 혁명사상의 뿌리는 로크로 대변되는 자유주의가 아니라 공화주의라는 것이었다. 다시 자유주의 주창자들의 공세가 이어지는 등 치열한 논쟁이 벌어졌다.(정경희 2004)
1967년 『미국혁명의 이데올로기적 기원』에서 공화주의가 미국혁명의 사상적 기원이라는 주장을 내놓음으로써 미국혁명사상 연구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던 버나드 베일린(Bernard Bailyn)도 1992년의 증보판에서 혁명기의 미국인들이 공화주의와 자유주의를 둘 다 받아들이고 있었다는 것을 인정했다.(정경희 2004)
이왕 이야기가 나온 김에 공화주의를 자세히 짚고 넘어가자. 공화주의(republicanism)는 직접민주주의(direct democracy)와 대의제(代議制) 민주주의(representative democracy) 사이의 균형을 취하기 위한 고민에서 비롯된 것으로, 이는 매디슨의 주장에서도 잘 나타난다. 매디슨은 “순수한 민주정은 한 사회를 구성하고 있는 많지 않은 수의 사람들이 직접 회합을 가지면서 정부를 운영하는 정치체제인 반면, 공화정은 대의제를 통해 운영되는 정치체제”라면서 “민주정과 공화정의 가장 큰 차이는 첫째, 공화정에서는 전체 시민이 선출된 소수의 시민들에게 정부 운영을 위임한다는 것이며, 둘째, 시민의 수가 늘어나고 국가의 영토가 커질수록 공화정의 가능성이 확대된다는 것이다.”라고 주장했다.(Dahl 2004)
‘republic’을 ‘re-public’으로 이해할 경우 그런 의미가 좀더 선명하게 다가올 것이다. 조정환(2005)은 republic의 어원에서 re는 ‘다시’를 의미하는 re가 아니라 res, 즉 물건을 의미했지만(즉 공중의 것), republic은 국가의 수중에 응고되어 있는 부와 권력을 다시 public에게 되돌리는 것으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고 역설한다.
최장집(2002)은 “서구에서 공화주의라는 말은 한국인의 심성 속에 깊이 자리잡은 공동체 전체에 대한 애정, 향토애, 민족애와 크게 다를 바 없는 내용”으로 “민주주의가 일련의 절차적․제도적 장치만으로는 제대로 작동하고 발전하기 어렵다는 문제의식에서 그 의미가 발생한다”고 했다. 그는 “공화주의는 공공선에 대한 헌신, 공적 결정에 대한 적극적인 참여와 모든 시민이 공동체로부터 배제되지 않고 권리와 혜택을 우리는 시민권의 원리, 시민적 덕에 대한 강조를 핵심 내용으로 한다”며 다음과 같이 말한다.
“즉, 그것은 적극적 시민으로서 정치에 대한 참여와 선출된 공직자의 시민에 대한 사회적․도덕적 책임성의 윤리를 함축한다. 따라서 논리전개의 방향은 자유주의와 역순으로 작용한다. 사적 자유와 권리로부터 국가의 기능을 도출하고 공적 질서를 구축하는 것이 자유주의라고 한다면, 공화주의는 공익을 우선시하면서 사익이 공적 영역을 침해하면 정치가 부패하고 공공선이 훼손된다고 믿기 때문이다. 또한 자유주의가 경쟁의 논리를 강조한다면, 공화주의는 참여의 윤리를 강조한다.”
공화주의는 출발 시점에서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여전히 실현해야 할 목표이지만 현실적으론 실현하기 어려운 이상으로 존재하고 있다. 공화주의를 둘러싼 갈등과 타협이야말로 정치의 주요 내용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참여가 왜곡된 상태에서 과잉일 경우, 참여하지 않는 것보다 못한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기 때문에, 참여의 내용과 질이 문제다. 이는 두고두고 모든 공화국들을 괴롭히는 문제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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